2026.07

나의 작업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은 흐른다(Panta rhei)”는 사유를 바탕으로, 자연의 끊임없는 흐름과 순환을 시각화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물결, 사구, 산맥의 능선 등 끊임없이 요동치며 중첩되는 자연의 궤적들은 서로 다른 매질을 통해 나타날 뿐, 모두 거대한 에너지의 축적과 흐름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들은 미시적으로는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양상을 띠지만, 거시적으로는 결국 하나의 거대하고 일관된 질서를 따르는 구조를 이룬다.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서 유기적으로 순환하는 운동, 난류의 흐름 속에서 발견되는 비선형적인 움직임, 미시적인 파동이 거시적인 흐름으로 변화하는 순간들. 나는 종이실과 빛의 반응을 통해 이러한 자연의 질서를 화면 위에 시각화하는 데 집중한다.
 
작업은 화면에 기준선을 설정하고, 그 위에 종이실을 붙여나가는 행위로부터 시작된다. 이어서 능선이나 사구, 물결의 유기적인 흐름을 따라 종이실을 화면에 쌓아간다. 이때, 화면 위로 촘촘히 쌓아 올린 종이실의 축적은 자연의 흐름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본 단위가 된다. 실이 쌓여갈수록 종이실의 물리적인 두께와 결로 인해 선들은 예기치 못한 지점에서 만나며 새로운 길을 생성한다. 그 길은 선들이 만들어내는 지극히 우연한 궤적이다. 기준선을 잡아 실을 붙여가는 행위는 나의 통제에 의한 지극히 선형적인 규칙이지만, 실들이 새로운 길을 생성하는 과정은 나의 통제를 벗어난 우연의 결과물이다. 결국 화면 위에는 질서와 우연이 상호 공존하게 된다.
 
수많은 실이 쌓인 화면은 물리적인 부조 효과 대신, 재료 자체의 물성과 빛의 흐름을 조율하며 움직임을 드러낸다. 이는 종이실의 방향을 섬세하게 바꿔가며 빛의 효과를 유도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며, 빛의 방향에 따라 명암이 변하는 시각적인 환영을 만들어낸다.




2026.03

결국 나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작은 웅덩이에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고요한 파동이다. 미세한 바람이 연못 위를 스칠 때 생겨나는 흔들림과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너울. 그것은 찰나의 흔들림에 불과하지만, 스스로 증식하고 중첩되며 결국 거대한 자연의 질서를 이루는 흐름의 시작점이 된다.

나의 작업은 이러한 미세한 움직임을 관찰하고, 그 안에 숨겨진 무한한 반복의 에너지를 포착하는 데서 시작한다. 화면 위에 한 줄씩 쌓아 올라는 종이실의 층위는 그 조용한 일렁임이 만들어내는 밀도와 축적의 과정이다.

작은 파문이 모여 거대한 동심원을 그리듯, 찰나의 흔들림을 단단한 결로 변화시켜 나가는 나의 작업은 작은 움직임이 거대한 자연의 흐름으로 치환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2025.09

나의 작업은 흐름과 물결에 대한 관찰, 그리고 그 바탕에 놓인 유체의 움직임과 파동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결, 물이 흘러가며 남기는 흔적, 그리고 모래가 바람에 밀려 끊임없이 이동하며 쌓여가는 모래 언덕은 늘 나의 가슴을 뛰게 하는 장면들이다. 이러한 장면들은 단순한 물리 현상을 넘어, 세계가 생성되고 변화하는 질서를 연상케한다. 그것은 고정된 형상이 아니라, 끝없이 변화하고 이어지는 세계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나는 반복되는 선과 밀도의 변화를 통해 유체의 흐름 안에서 퍼져나가는 파동의 흔적을 시각화한다. 질서있게 이어지는 층류는 선의 연속성으로, 예측할 수 없는 난류는 굴곡과 진동으로, 그리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와류의 흔적은 미묘한 떨림으로 화면 위에 드러난다. 수많은 선들은 켜켜이 쌓이며 밀도와 방향, 그리고 빛의 각도에 따라 서로 다른 파동의 리듬을 일으킨다. 그리고 곧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시각적 효과를 넘어, 세계가 이어지고 변화하는 방식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그것은 화면을 통해 물질의 움직임을 기록하고, 그 안에 스며 있는 시간과 에너지의 흔적을 담아내는 것이다.




2024.10

이번 전시의 제목인 '판타 레이(Panta rhei)'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에서 비롯된 말로, "모든 것은 흐른다."라는 뜻을 담고있다. 천상세계를 보이지 않는 에테르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 아리스토텔레스, 유독 유체의 움직임, 즉 보텍스(vortex) 스케치를 많이 남긴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 고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판타 레이'의 관점으로 세계를 이해했다고 한다.
 
흐름으로 가득 찬 세계, 그 세계에 대한 나의 관심은 물결에서 시작한다. 나는 물결을 수많은 층위의 결들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움직임의 연속으로 이해한다. 물결이 일렁이는 순간, 동심원을 이루며 퍼져나가는 순간을 생각해보면, 흐름은 단순히 하나의 덩어리가 아닌, 그 안에 빽빽이 쌓여있는 부분들의 결합에서 기인함을 알 수 있다. 수많은 결들이 쌓여 흐름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마치 선의 흐름이 면의 흐름을 유도하고, 면의 축적이 미세한 움직임을 생성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과정은 화면 위에 종이실을 겹겹이 붙이며 흐름과 파동을 드러내는 나의 작업 방식과도 닮아있다.
 
물결, 움직임, 그리고 흐르는 것에 대한 관심은 점차 주변의 다른 것들로 옮겨간다. 몸 안에 흐르고 있는 혈액, 계속해서 순환하고 있는 공기와 에너지 등 이 세상의 거의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흐른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다. 그리고 종국에는 이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 안에서 가능하고, 시간과 함께 흐른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치 물결처럼 끊임없이 흐르고 변화하는 모든 것, '판타 레이'의 관점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