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실재의 근원과 창조
김주옥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예술가가 무엇을 창조한다는 것, 실재함을 표현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 두 가지 물음은 우리가 조원아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고자 할 때 궁극적으로 만나게 되는 질문일 것이다.

조원아 작가 작품의 형상은 마치 유체 흐름의 회전을 보여주는 소용돌이를 나타내는 듯하기도 하고 무언가의 파동 그래프를 보여주는 듯도 하다. 그리고 이것을 멀리서 지켜봤을 때, 비스듬하게 바라봤을 때 모두 다른 결처럼 느껴진다. 작가가 사용하는 ‘루피’라 불리는 여러 색상의 종이 실은 색상별로 그 느낌이 다르다. 어떤 색을 그 옆에 마주하게 하는지에 따라, 어떤 색을 조합하게 되었는지에 따라 각기 다른 시각적, 촉각적 감각을 자극한다.

조원아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 어쩌면 예술의 본질적인 ‘창조’에 대해 이야기해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거시세계의 현상을 통해 실재를 이해하고 파악하고자 하는데, 우리가 감각하고 인식할 수 있는 것들의 현상은 미시세계의 자연 질서와는 다른 규칙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술을 만날 때, 그 근원을 파악할 때, 예술의 본질을 이야기할 때 무엇을 근거로 바라보고 해석해야 할 것인가?

조원아 작가의 작품에서 우리는 무언가의 에너지, 시각화된 자연의 현상, 미지의 근원 등을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이것들이 파동의 에너지로 존재하게 되었을 때 그것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생명 에너지의 원천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숨 쉬고 심장이 뛰는 반복적 운동을 통해 우리는 생존한다. 그리고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에너지를 생산해내며 고유의 파동을 지니는데, 조원아 작가는 생명의 에너지로 귀결될 수 있는 여러 에너지의 파동을 그려내며 그 속에서 생과 멸의 순간과 지속과 변화를 표현한다.

또한 작가의 작품에서는 계속 연속적으로 지나가는 선들과 함께 순식간에 각도를 달리하며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는 패턴이 보인다. 그리고 이 패턴은 작품마다 다른 형태로 반복된다. 작가는 어떤 에너지와 파동을 꾸준히 조심스럽게 만들어내며 그것을 만드는 그 순간순간을 체험한다. 그리고 이 모든 작업 행위를 수행의 일종으로 겸허히 받아들이며, 자연에 순응한다. 그뿐만 아니라 작가는 그 안에서 계속 변화하고 지속하는 그 무언가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행위는 어떠한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발산하는 영속과 반복과도 다름없다.

이처럼 작가가 작품을 창조한다는 것은 작가에게 자신의 작업 ‘세계’를 창조하는 것과 같다. 작가의 작업 방식은 그 하나로 이미 세계의 창조이다. 어쩌면 작가는 작품을 통해 스스로를 정화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조원아 작가의 작품에서 보이는 이러한 수행적 태도는 창조의 행위를 표현한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의 『영원회귀의 신화』(이학사, 2003)를 통해서도 해석해 볼 수 있다. 엘리아데는 창조의 행위란 비현현에서 현현으로의 이행이라고 말하면서 이는 마치 혼돈에서 코스모스로 이행하는 우주생성론적 관점과 같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모든 창조는 가장 우주 창조의 행위인 세계 창조를 반복하고 이에 모든 건립되는 것들은 세계의 중심에 그 기초를 둔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의견은 작가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어떠한 에너지의 흐름과 파동의 변화가 창조를 실재의 충일로 보는 엘리아데의 입장과 같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가 창조하는 작품의 세계는 성스러운 어떤 행위가 세계 속으로 돌입하는 것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구현하고 창조하는 태도는 ‘우주 창조’라는 전형을 반복해서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실재를 표현하며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수행적 창조의 행위를 자신의 작업 그 자체로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가 조원아 작가의 작품을 본다는 것은 어쩌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지켜보는 것일 수도 있다. 창조의 행위로 만들어지는 작품의 현현들은 아직은 우리가 거시세계의 규칙으로는 알 수 없지만, 불확실하고 불확정적인 어떠한 근원 깊은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나타남’의 방식으로 귀결된다.